한글날 차담회

격년으로 열리는 AGTC를 쉬어가는 이번 해에는 577돌 한글날을 맞아 ‘차와 함께 한글과 글꼴을 이야기하는’ 차담회를 엽니다. 글꼴을 만드는 사람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도 함께하며, 글꼴의 작은 이야깃거리들을 주제로 다룹니다. 차담회는 다음 AGTC 준비와 더 좋은 글꼴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될 것입니다.

태도의 유형 / Attitude Type

이번 차담의 주제는 ‘태도’입니다. 글꼴에 태도를 붙여본다면, 다양한 사용 환경, 특히 지면과 화면에서 글꼴이 취할 모습이 어떠해야 할지 이야기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편, 태도는 어떤 상황에 대해 취하는 입장도 의미합니다. 이 관점에서 글꼴을 개발하는 사람 또는 사용하는 사람이 앞으로의 글꼴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는지, 또 어떤 태도를 취할 수 있을지 대화를 나누어봅니다.

차담회에서 나눈 이야기는 웹사이트와 따옴표레터를 통해 공유됩니다.

이야기들

〈AG 초특태고딕 - 좁은너비〉 개발기
조두경
〈AG 초특태고딕 - 좁은너비〉 개발기를 발표하는 조두경 연구원
〈AG 초특태고딕 - 좁은너비〉 발표 내용에 질문하는 디자이너 조현열

〈AG 초특태고딕 - 좁은너비〉는 잡지 『마당』의 제호 레터링을 바탕으로 〈AG 초특태고딕〉의 너비를 줄인 글꼴입니다. 글자의 너비는 좁아졌지만 굵은 획과 무겁고 강한 인상을 유지하기 위해 다양한 형태를 실험했습니다. 가로 폭이 좁아진 대신 글자의 위아래로 남는 공간을 십분 활용했고, 좁은 너비에 효과적인 글자 구조를 연구했습니다. 특히 섞임모임꼴이나 쌍닿자 계열의 공간 분배가 까다로웠다고 전했습니다.

배리어블로 확장될 가능성이 있는지?
당장은 없다. 〈AG 초특태고딕〉과 〈AG 초특태고딕 - 좁은너비〉의 호환을 따로 맞춰줘야 하는데 아주 간단한 작업처럼 보이지는 않아 배리어블로 확장하는 것은 보류했다.
한글이 좁아진 비율에 비해 라틴은 상대적으로 너비를 조금 덜 좁힌듯 하다.
라틴은 한글보다 훨씬 더 공간이 작아지게 되어 딜레마였다. 〈AG 초특태고딕〉보다 너비를 좁히되 한글만큼은 아니게 조정했다.
〈AG 초특태고딕 - 좁은너비〉 글자 일부는 글자사이를 조정하기 위해 글자 여백을 마이너스로 조정했다고 했다. 글자를 그릴 때 여백이 마이너스 값이 되면 안되는지?

이게 프로그램마다 약간 상이할 수 있다. 예전에는 글자의 아웃라인이 글자 칸을 넘어가면 안 되는, 약간의 금기 같은 거 금기 같은 거였다. 그래서 〈AG 초특태고딕 - 좁은너비〉에서 마이너스 값을 주는 것이 금기를 처음으로 깨보는 느낌이었다.

사실 한글에서도 마이너스 여백이 큰 문제가 될 것은 없다. 라틴 알파벳에서는 그 영역을 넘어가게 디자인하는 일이 다수이다.

의외로 옛날 원도들도 보면 ‘ㅏ'꼴에서 곁줄기가 아주 넘어가게 그려진 것들도 꽤 있다. 티가 나지 않을 뿐.

잡지 마당의 제호 레터링이 〈초특태고딕〉의 시작이기도 한지?

시기상 마당의 제호가 조금 더 앞서 있긴하다. 〈초특태고딕〉 글꼴을 만들기 위해 마당 제호를 그리신 것은 아닌 것 같다.

잡지 마당의 제호와 별개로 〈초특태고딕〉 원도가 존재한다. 둘 사이에 유사한 점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최정호 선생님이 가진 두꺼운 고딕을 그릴 때의 미감이지 않을까 한다.

〈AG 초특태고딕 - 좁은너비〉가 궁금하다면
agfont.com에서 보기

〈AG 초특태고딕 - 좁은너비〉의 개발기는 이전 이야기는 따옴표레터 8호AGTI 인스타그램에서 볼 수 있습니다.

화면용 글꼴
길형진, 윤병선

화면은 30cm 거리에서 보는 3cm 남짓한 스마트 워치부터 6m 이상의 거리에서 보는 대형 전광판까지 그 종류가 천차만별입니다. 종이보다 화면으로 정보를 보는 빈도가 높아지면서 화면에 적합한 글꼴에 대한 요구도 많아졌습니다. 편집이나 그래픽 디자이너의 글꼴 사용 프로그램, 그리고 글자가 지면에 출력되는 환경은 글꼴 디자이너도 어느 정도 익숙하게 느끼는 반면, 개발 환경에서 글꼴이 어떻게 적용이 되는지, 어떤 개발 프로그램에서 사용되는지, 또 화면에 출력되는 상황이 어떤지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기 때문에 기존의 글꼴은 개발자들이 필요로 하는 사양과 맞지 않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글꼴 사용에 불편함을 느끼던 일부 UX 디자이너는 오픈소스 글꼴을 활용해 직접 글꼴을 제작했습니다. 디자이너 길형진의 〈Pretendard〉(이하 프리텐다드)와 디자이너 윤병선의 〈SUIT〉(이하 수트)가 그 예입니다.

처음 〈프리텐다드〉와 〈수트〉같은 류의 작업들이 나왔을 때 굉장히 당황했다. 기존 글꼴의 어떤 점이 부족해서 이런 작업들이 나오게 되었는지 궁금했다.

UI 작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보니, 거기에 맞는 글꼴을 만들고 싶어도 매트릭스를 어떻게 조정해야 되는 가운데로 정렬이 되는지 알 수가 없어 작업이 어려웠다. 주록 외곽의 형태가 스크린의 저해상도에서 많이 깨지지 않는 정도로만 접근했다.

동감한다. 보통 인쇄 기반의 글꼴을 만들다 보니 인디자인(Adobe Indesign) 정도는 익숙한데, 반면 UX UI 프로그램은 넘을 수 없는 허들이 있는 것 같았다.

〈프리텐다드〉개발기를 발표하는 디자이너 길형진
윤병선, 구모아 글꼴 디자이너

〈프리텐다드〉와 〈수트〉가 진행된 배경과 세부적인 작업 내용은 다르지만 목적은 같습니다. 〈본고딕〉은 중립적인 인상의 다국어를 지원하는 오픈소스 글꼴로, 발표된 이래 수많은 사람들에게 꾸준히 사랑받고 있습니다. 많은 UI 디자이너 역시 〈본고딕〉을 즐겨 사용하지만 〈본고딕〉으로 완성도 높은 디자인을 하기 위해선 수많은 조정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디자이너와 개발자와의 언어 차이로 인한 소통의 어려움과, 넉넉하지 않은 일정 등의 이유로 섬세한 타이포그래피 디자인이 반영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길형진과 윤병선은 〈본고딕〉의 이런 UI적 사용성이 크게 떨어지는 점을 안타까워하며, 〈본고딕〉을 개조해 별도의 추가적인 조정 없이도 높은 완성도를 낼 수 있는 UI용 글꼴을 제작하게 됩니다.

1.

두 디자이너는 〈본고딕〉의 한글에 각자 더 잘 어우러진다고 생각한 로마자와 기호활자를 섞어 〈프리텐다드〉와 〈수트〉를 제작했습니다. 두 글꼴에서 공통으로 조정된 부분 중 첫째로, 언어 간 글리프의 크기 비율과 정렬을 재조정한 점을 살펴보겠습니다.

글꼴 디자이너는 각 글자들의 속공간 비율을 중요하게 보는 편입니다. 따라서 오밀조밀한 구조를 가진 한글과 비교적 단순한 구조를 가진 로마자의 속공간 크기를 비슷하게 맞추다 보니, 한글에 비해 로마자의 크기를 작게 그리게 됩니다. 〈본고딕〉도 마찬가지로, 사용자 입장에서는 한글이 로마자에 비해 크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덧붙여, 같은 언어권의 글꼴이라도 각자 그려진 크기는 모두 다릅니다. 같은 포인트(pt)에서도 각 글자 공간을 어느 정도로 활용했는지, 또 글자 속공간의 크기와 균형에 따라 크기 차이가 납니다. 〈본고딕〉과 〈Apple SD 산돌고딕 Neo〉를 비교해 보면 〈본고딕〉이 조금 더 크게 그려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프리텐다드〉와 〈수트〉 모두 〈Apple SD 산돌고딕 Neo〉의 한글 크기와 비슷하게 줄여 한 줄 안에 로마자와 한글이 비슷한 크기로 채워져 보이도록 조정했습니다.

모두 다른 크기로 그려진 글꼴

일반적으로 한글과 로마자를 정렬할 때 한글의 중앙에 위치하지 않고, 중상단의 시각흐름선을 맞추고자 한글의 중심보다 조금 위에 위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숫자와 문장부호는 라틴에서 비롯된 글리프로 로마자의 높이와 획 굵기가 그대로 반영되고 로마자의 위치와 맞도록 그려집니다. 따라서 숫자와 문장부호 등의 기호도 한글의 중심보다 조금 위에 위치하게 됩니다. 물론 이 방법이 원칙이거나 정답은 아닙니다. 한글과 높이를 맞춰 로마자를 크게 그릴 수도 있고, 문장부호나 숫자도 한글에 우선적으로 어울리도록 그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라틴어권 사람이나 글꼴 디자이너의 눈에는 다소 어색하고 완성도가 떨어져 보여 적당한 크기와 위치로 조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양한 한글과 로마자의 정렬

〈프리텐다드〉와 〈수트〉에서는 기호활자의 정렬을 한글의 중앙에 맞게 조정했고, 크기도 한글과 좀 더 어우러지도록 했습니다. 이처럼 언어 간 크기 비율을 맞춘 후 글자의 정렬도 중앙에 맞게 재배치함으로써, 영문에 맞게 잡힌 레이아웃에 한글이 함께 적용되어도 글줄이 흐트러지지 않아 한 층 더 사용이 편리하게 했습니다.

한글과 로마자, 문장부호의 크기 비율과 정렬이 조정된 〈프리텐다드〉와 〈수트〉
스케치 앱에서 한글을 함께 타이핑했을 때 정렬이 흐트러진 모습 © 프리텐다드 이야기 발표 자료 중

이야기를 다듬고 있습니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화면용 글꼴에서 글자의 외부 공간을 조정한 내용에 관한 내용입니다.

참여자 열둘

구모아
글꼴 디자이너

산돌과 AG타이포그라피연구소에서 글자를 만들었다. 〈늦봄〉과 〈최정호 스크린〉 첫 번째 버전을 만들었고, 대표 작업으로 네이버 〈마루 글꼴 프로젝트〉와 현대백화점 〈해피니스 산스〉가 있다. 지금은 대학원에서 공부 중이다.
https://www.instagram.com/moa_ku

길형진
UX 엔지니어

원티드랩에서 UX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다. 취미로 〈프리텐다드〉를 개발했다. 디자인을 좋아하고, 브랜딩과 그래픽 디자인, 특히 사용자 인터페이스 디자인을 주로 했다. 더 쉽게 일하는 방법을 구하거나, 한 주제를 깊이 탐구하고 선보이는 걸 좋아한다.
https://www.instagram.com/orioncactus

김주경
글꼴 디자이너

서울여자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를 졸업했고, 현재 AG타이포그라피연구소에서 연구원이자 글꼴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 개인 글꼴로는 〈화양연화체〉(2017)를 제작했으며, 〈AG 훈민정음〉(2018), 〈AG 초특태명조〉(2022) 등의 AG 글꼴과 아모레퍼시픽 〈APHQ 한글〉(2020), 현대백화점 〈해피니스 산스 Regular〉(2022) 등의 기업 아이덴티티 글꼴을 디자인했다.
https://www.instagram.com/jooo.gng

박부미
글꼴 디자이너, 바텐더

2013년부터 산돌에서 근무하며 다양한 글꼴을 만들었다. 현재 이태원에서 바텐더로 일하며 개인 글꼴을 만들고 있다.
https://www.instagram.com/boo_mee

박한솔
글꼴 디자이너

AG타이포그라피연구소의 연구원으로 현재는 〈AG 최정호 민부리 스크린〉을 작업하고 있으며 AGTC 2022 기획, AG NFT 프로젝트 ‘가갸’ 등에 참여했다.
https://www.instagram.com/hansol.otf

윤병선
UI 디자이너

자체적 필요에 따라 디자이너와 개발자 간의 소모적인 커뮤니케이션을 감쇄하는 본고딕 기반의 본문용 서체 〈SUIT〉를 제작했으며 이어 제목용 서체 〈SUITE〉를 제작했다.
https://sunn.us

이노을
글꼴 디자이너

lo-ol Type Studio를 운영 중이다. 한글과 라틴 서체를 제작하고 있다. 〈아르바나〉, 〈아리온〉, 〈오흐탕크〉, 〈기파란〉, 〈퓨자〉, 〈오흐탕크 한글〉 등을 제작했다.
https://www.instagram.com/noheul_and_type

이주희
글꼴 디자이너

노타입의 글꼴 디자이너로 활동했으며, 〈소리체 Pro〉(2021)와 〈기후위기폰트:한글〉(2022) 제작에 참여했다. 현재 AG타이포그라피연구소의 연구원으로 활동 중이다.
https://www.instagram.com/jooo.h_

조두경
글꼴 디자이너

레터링과 타입디자인에 흥미를 느껴, 21년 12월부터 공기 좋고 물 맑은 AG타이포그라피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널리 쓰일 글꼴을 만들어 책이나 전시 제목 등에 쓰인 것을 보고 주위에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큰 2년차 디자이너다.
https://www.instagram.com/bird_kyung

조현열
그래픽 디자이너

망원동에서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디자이너다. 주로 미술 관련 작업을 중심으로 출판사들과 협업한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타이포그래피를 가르친다.
https://www.instagram.com/studio_heyjoe

최규호
그래픽 디자이너, 앱 개발자, 음악가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앱 개발자이자 아마추어 음악가로 활동하고 있다. 학창 시절 앱 개발을 시작했고, 대학에서 시각 디자인을 공부하고 북 디자인, 포스터 디자인 등의 그래픽 디자인 작업을 하고 있다. 만들어 운영하고 있는 앱으로는 책 제작 시 종이 사용량 계산과 책등 두께 계산 등을 제공하는 ’페이퍼맨’(Paperman)이 있다.
https://www.instagram.com/guhochoi

한동훈
글꼴 디자이너

글을 쓰고, 글씨를 쓰고, 글자를 설계하는 등 글자와 관련된 모든 것에 관심이 있다. 산돌, 티랩을 거쳐 현재 서체 스튜디오 얼라인타입에서 디지털 폰트와 레터링을 제작한다. 본명조 개발에 참여했으며 〈Tlab월광포르테〉, 〈레트로라이프〉, 〈사이키델릭〉, 〈부활〉, 〈KCC간판체〉 등 다수의 폰트를 만들었다. ‘월간 디자인’, ‘비즈한국’, ‘타이포그래피 서울’ 등의 매체에 칼럼을 썼으며 2021년 에세이집 『글자 속의 우주』를 출간했다. 폰트를 디자인할 때는 한글 온자 간의 유기적인 연결과 단단하고 안정적인 형태를 중시한다.
https://www.instagram.com/donghoonhaan

AG타이포그라피연구소
AG Typography Institute, AGTI

AG타이포그라피연구소는 연구를 바탕으로 글꼴을 멋짓고 키우며 새로운 글꼴 문화와 흐름을 만들고자 합니다.